테라노스 사건 엘리자베스 홈즈 기업 사기 주가 ceo 실리콘벨리 거짓말 제2의 스티븐 잡스

엘리자베스 홈즈의 에디슨 키트 선전사진 [1]

전통적인 혈액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주사기를 이용하여 정맥으로부터 수ml의 혈액을 뽑아야 한다.[2] 이 때문에 환자의 의료 부담 비용이 지독하게 높은 미국에서는 간단한 혈액 검사를 하기 위해서 피검사자가 수백 달러의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또한 숙련된 의료진이 부족한 저개발국이나 내전 지역에서는 혈액 검사 시행 자체가 힘들다. 홈즈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에디슨 키트를 사용할 시 채혈 난이도와 혈액 검사 비용이 혁신적으로 낮아진다. 질병 진단 결과를 받으려면 손끝을 바늘로 따서 피 몇 방울을 에디슨 키트에 담아 테라노스 본사로 보내기만 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고객이 부담하는 비용은 약 50달러.

테라노스는 미국내 시장점유율 2위의 약국 체인인 월그린(Walgreens)을 통해서 에디슨 키트를 판매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모았고,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세이프웨이와도 계약을 체결했다.[3]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될 것 같은 기술' 개발에만 치중할 뿐 '세상을 바꿔놓을 신기술'은 발명하지 못했다는 콤플렉스에 은근히 시달리던 실리콘밸리는 테라노스의 등장에 광적인 반응을 보였다.[4] 미국의 테크 미디어는 홈즈와 에디슨 키트를 치켜세우느라 바빴다. 홈즈는 항상 검은 터틀넥을 골라 입어 스티브 잡스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생명공학 관련 잡지보다는 IT 계열 미디어에 더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IT, 공학 계열 관련자들의 기대를 불러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의학계와 생명과학계 관련자들은 손 끝에서 채취한 소량의 혈액으로도 질병 진단이 가능하다는 주장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일단 기존의 방식대로 정확한 검사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오염도가 낮은 검체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손끝과 같은 말단의 모세혈관에 바늘을 찌르면, 상당량의 간질액 및 파괴된 세포 내액이 혈액과 섞여버린다. 설령 특수한 기술을 이용해 순수히 혈액만 채취할 수 있다 해도 여전히 다른 문제가 남는다. 극미량의 혈액은 질병 세포를 극히 적게 포함할 수밖에 없으므로, 표본으로서 대표성을 갖기 어려운 탓이다.

그러나 홈즈는 의구심을 품은 사람들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에디슨에 적용한 극비 기술은 외부로 유출시킬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에디슨의 진단 기술을 증명할 실험 결과나 논문은 단 한 건도 발표하지 않았다.[5] 테라노스의 투자자들은 기술 설명을 듣지 않겠다는 조건에 동의해야만 투자에 임할 수 있었다.

최초로 테라노스의 기술이 허구임을 보도한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에디슨의 원리를 묻는 뉴요커지의 질문에 홈즈가 이렇게 답하였다고 한다.

2015년, 월스트리트 저널(WSJ)의 기자 존 커레이루(John Carreyrou)[6]는 뉴요커의 인터뷰 내용에 의구심을 갖고 테라노스 취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커레이루는 테라노스의 전 직원 및 내부고발자의 치명적인 폭로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7] 테라노스가 에디슨으로 진단할 수 있다고 제시한 250가지의 혈액검사 항목 중 실제로 에디슨이 진단할 수 있는 것은 10여 개(즉, 5% 정도) 항목에 지나지 않았으며, 나머지 항목은 대기업들이 출시한 별도의 기기로 검사를 시행하여 진단한 병이었다. 게다가 테라노스는 규제의 빈틈을 교묘하게 노려 FDA의 검사도 거치지 않은 채 에디슨을 시장에 공개하였으며, 실험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실험 결과 조작으로 덮고 넘어갔다. 처음부터 만능 진단 키트는 없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폭로 보도 직후, 홈즈는 "지금 진단하지 못하는 항목들을 진단할 수 있는 기술도 조만간 확보할 것이니 문제가 안된다"는 반응을 나타냈다.[8] 하지만 이는 그동안 자신이 내세워 온 기술력이 허위에 불과함을 자인한 것이었고, 홈즈와 테라노스에 대한 신뢰는 산산히 무너졌다.

결국 테라노스가 지금까지 내놓은 실험 결과는 모두 무효가 되었다.(#) 2016년 테라노스는 주식 시장에서 퇴출되었으며, 에디슨 키트를 비치했던 월그린 등의 대형 마트들은 테라노스와의 계약을 중단했다. 연방 검찰은 본격적인 기업 조사에 착수했다.

한때 45억 달러로 평가받았던 홈즈의 주식은 하루 아침에 0원으로 추락했다. 10억 달러에 이르는 투자금 역시 공중 분해 되었고, 애리조나 주는 그간 테라노스에 주었던 세제 혜택과 보조금에 대한 환급을 요구하고 있다. 루퍼트 머독이 테라노스에 투자하여 손실한 금액만 약 1억 달러에 이른다.[9]

2016년 8월 미국 보건부 산하의 CMS(Center for Medicare & Medicaid Services)[10]는 향후 2년간 홈즈에게서 실험실 운영 및 설립 자격을 박탈하고, 10년간 홈즈가 기업 임원으로 취임하는 것을 금지했다.

2016년 11월, 테라노스 홈페이지에 '엘리자베스 홈즈로부터의 공개 서한'이 올라왔다. 임상 실험 연구소와 고객 대상 혈액 검사를 시행하는 '웰니스 센터'(Wellness Center)를 모두 폐쇄한다는 내용이며, 이 때문에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펜실베이니아에서 근무 중인 직원 340명이 해고되었다. 홈즈는 앞으로 지카 바이러스를 진단할 수 있는 소형 혈액 분석기인 미니랩에만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1월, 모든 연구소에 폐쇄 결정이 내려졌다.

AP, CNN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2018년 3월 14일(현지시각)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바이오 벤처 기업 '테라노스' 창업주 엘리자베스 홈스의 의결권을 박탈하고 향후 10년간 어떤 상장사의 관리자도 될 수 없는 중징계를 내렸다.

2018년 6월 15일. 연방대배심이 전 경영자(CEO)인 엘리자베스 홈즈와 운영책임자(COO)인 라메쉬 발와니[11]를 총 11건의 혐의로 기소했다. 산호세 지방 법원에서 재판 중이다.

2018년 9월, 테라노스는 끝내 청산 절차를 밟게 되었다. 회사 측에 남은 현금은 채권자들이 분할하게 된다.(#)

홈즈에 대한 재판이 먼저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로 인해 3차례나 재판이 연기되었다.

2021년 3월, 홈즈의 변호인과 검찰이 홈즈가 임신하여 재판을 연기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 8월부터 재판이 재개되었으며 최대 20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을 수 있다고 한다. # 현재 홈즈는 사기 사건의 실제 주범은 자신의 연인이자 테라노스의 전직 COO 발와니였고, 자신은 단지 얼굴마담으로 이용당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12] 물론 발와니는 이를 부인하는 입장. 또한 "신기술 개발에 실패한 것은 죄가 아니다"라는 논리로 결백을 호소하는 중이다.[13]

2022년 1월 3일, 배심원단은 11가지 혐의로 기소된 홈즈에 대해 4건의 혐의에 유죄평결을 내렸다. 배심원단은 홈즈가 기소된 사기 혐의 4건에 관해서 모두 유죄로 평결했으나, 환자를 기만했다는 혐의에 관련한 4건은 무죄, 나머지 3건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후 판사의 판결에 의해 최종 형량이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홈즈측은 이에 대해 항소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투자자들은 스타트업을 평가함에 있어 스토리텔링과 CEO의 캐릭터에 점수를 많이 주는 경향이 강하다. 그중에서도 홈즈는 특히 실리콘밸리에서 선호하는 '영웅 서사' 내지는 '성공 신화'에 고스란히 부합하는 캐릭터였는데, 대락 다음과 같은 조건들 덕이었다.

1. 세계적 명문대, 스탠퍼드 중퇴

그 때문에 종종 하버드를 중퇴한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그, 리드 칼리지를 중퇴한 스티브 잡스에 비견되곤 했다. 하물며 스탠퍼드는 사실상 실리콘밸리의 모체나 다름없으며, 미국에서도 혁신의 상징, 창업의 요람처럼 평가받는 학교다. 물론 의학 진단기기 회사 '창업주/경영인'이 생명공학과 관계 없는 전공 출신인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이런 경우는 본인이 연구 개발 과정에 깊숙이 손대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로 서정진 셀트리온 전 회장이 있다.[14]

2. 실리콘밸리에서 보기 드문 비유대인 백인 여성 CEO

실리콘밸리의나 유명 IT회사의 CEO들은 기본적으로 '아시아계', '유대계', '남성' 중 두 가지 이상, 최소 한 가지의 조건을 갖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저 조건들은 한마디로 미국 내에서 전형적인 너드의 이미지를 가진 집단이다. 구글의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15]는 유대계 & 남성이다. 구글의 현 CEO 선다 피차이와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사티아 나델라는 인도계 & 남성이다. NVIDIA의 CEO 젠슨 황은 대만계 & 남성이며, AMD의 CEO 리사 수는 여성이지만 대만계다. 유튜브의 CEO 수잔 워치츠키, 생명공학 벤처 업체 23앤드미의 앤 워치츠키[16] 자매는 동유럽계 성을 가진 전형적인 아슈케나지 유대인이다. 도리어 테슬라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는 전남 영광 출신의 한국계 백인 남성이지만 순탄치 않은 학창시절과 남들에게 망상가라는 조소를 들어오면서도 현재 성공한 CEO가 되었다. 스토리만큼은 홈즈보다도 더 극적인 셈. 결과적으로 하나씩 따져보면 홈즈는 여기에서 모두 벗어난 특징을 가진다. 이는 실리콘밸리나 테크 스타트업에서는 실제로도 드문 특징이고, 고위직으로 눈을 돌려보면 더더욱 찾기 힘든 특징이다. 예나 지금이나 벤처투자자들은 '새롭고 신선한 스타트업'을 찾아 헤매며, 따라서 이런 조건을 하나도 갖추지 않은 홈즈는 투자자들에게 대단히 신선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3. 준수한 외모

멋진 외모도 플러스 요인이었다. 미인이면서도 이지적이고 냉철한 엘리트적 인상을 갖춘 것이 투자자들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거기에 원래 갈색인 머리도 노란 금발로 염색해서 인상을 뚜렷하게 만들고, 목소리를 낮춰서 자신의 외적 이미지를 철저히 통제했다. 검은 터틀넥은 덤. 당장 날카로운 실루엣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위의 에디슨 키트 선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17] 업계 종사자들의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홈즈의 특성들이 투자자들과 언론의 눈을 가리는 장막이 되었다.

4. 스토리텔링

창업 후 자신의 전 지도 교수 채닝 로버트슨을 연구원으로 고용하는 등의 비범한 행동, 검은 터틀넥을 즐겨 입는 이유에 대해 묻자 "연구에 전념해야 하는데 옷 같은 걸로 고민하기 싫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거나, 채혈에 대한 공포 때문에 에디슨을 발명하게 되었다고 말한 것 등이 그것이다.[18] 실제로 진실이 까발려지기 전에도, 홈즈가 연구보다는 이미지 메이킹에 관심을 더 많이 보인다는 비판이 간간이 나왔을 정도였다. 홈즈는 '젊고 신비로운 천재 미인 CEO', '여자 잡스'라는 캐릭터를 구축했고, 실상은 아무것도 없는 속 빈 강정에 불과한 기업이었던 테라노스는 비합리적일 정도로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다. 테라노스의 가능성을 보고 달려든 펀드의 규모는 막대했다. 인기가 정점에 달하던 2015년, 테라노스의 시가 총액은 90억 달러를 넘어섰다. 세상의 다른 모든 메디컬 스타트업의 시가 총액을 다 합쳐도 테라노스의 규모를 따라갈 수 없었다. 이 모든 투자가 CEO의 캐릭터와 스토리텔링만 보고 이뤄진 것이다.

5. 언론과 각계 인사들의 조장 내지 방조

위와 같은 이유로 언론에서는 홈즈의 사기행각을 들추긴 커녕 오히려 홈즈를 "기적적인 젊은 여성 CEO"로 띄워주기에 급급했다. 수년간 아무도 테라노스를 의심하지 않았다. 많은 신문, 잡지, TV프로그램은 마치 홈즈를 새 시대 여성 CEO 독려운동의 아이콘으로, 혹은 새로운 잡스로 삼기라도 한 듯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미국의 유명 인사와 투자자들이 홈즈의 뒤를 받쳐주었다. 테라노스와 홈즈의 인기를 등에 엎고 이미지 상승 효과만 노리는 언론들과 정계 인사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테라노스는 전설적인 외교관 헨리 키신저와 전 국무장관 조지 슐츠,[19] 제임스 매티스(트럼프 행정부의 첫 국방장관)를 이사로 두었고, 언론의 제왕 루퍼트 머독의 투자를 받았다.[20] 현직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그녀를 백악관에 수 차례 초청했고 미국의 글로벌 기업가 정신 대사로 초청했다. 또 조 바이든 현직 부통령은 직접 테라노스를 방문 그녀를 칭찬, 격려했다. # 또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그녀와 직접 대담을 나누며 칭찬과 격려를 해주었다. (공교롭게도 민주당 출신 대통령 중 생존해 있는 인물 모두가 그녀를 직접 만나 격찬했다.) 그리고 워렌 버핏과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 회장이 공개적으로 홈즈를 극찬했다. 미국에서 테라노스의 권위를 의심한다는 것은, 곧 미국의 실권자들이 지닌 판단력을 의심한다는 소리나 다름 없었다. 그외에도 팀 드레이퍼[21] 같은 실리콘벨리의 존경받는 벤처캐피탈 투자자들이 홈즈를 칭송하면서 엄청난 투자금을 쏟아부었다. 이런 유명인사들의 후광을 등에 업고, 테라노스는 제대로 된 테스트 제품은커녕 실험 데이터조차 공개한 적 없음에도 엄청난 영예를 누렸다. 테라노스의 투자자 중 의학과 관련된 인물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22]

위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여러모로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또 3번의 준수한 외모, 그리고 4번의 스토리텔링이라는 점에서 만능세포 연구논문 조작 사건의 오보카타 하루코와 굉장히 비슷하다. 홈즈와 오보카타 하루코 모두 연구실(회사)에서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23]

이는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등에서 2014~2015년도 글들을 검색해 보면 당시의 홈즈를 칭송하는 뉴스 기사나 블로그 글을 여전히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은 단순히 '이런 유니콘 기업이 있다더라' 수준의 소개글이지만, 간혹 정말 진지하게 홈즈의 위대함 등을 분석한 글들도 있다.

결국 WSJ의 폭로 이후, 미국 언론은 허황된 '성공 신화'가 시장의 판단력을 이렇게나 형편없게 만든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