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生三世步生莲 삼생삼세 보생연: Wherever Step Goes, Lotus Blooms 2권의 7장(1)

눈이 너무 나빠져서 걱정이다. 컨디션 안 좋을 땐 정말 온 세상이 뿌옇게 번져 보이기까지 한다. 당분간 전자파와 블루라이트 나오는 기계들을 멀리하려는데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지금도 이렇게....ㅠㅠ

어린 시절 난 중국 무협 소설을 유치하고 문학성 없다고 생각했다. 가십이나 다루는 주간지처럼 가볍게 느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갖게 한 원인 중엔 고시 공부하는 친구가 한몫했다. 그는 뇌를 식혀야 한다며 만화 가게를 자주 찾아갔는데 라면, 짜장면, 떡볶이 등을 질리지 않도록 돌아가며 시켜 먹으며 무협 소설을 15층 석탑처럼 쌓아놓고 읽곤했다. 왜 저러고 사나, 한심한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내 생각이 편협했던 것 같다. ^^

보생연 2권의 7장은 정말 흥미진진하고 설레는 내용들로 전개된다. 숨겨졌던 진실과 감정들이 그 형체를 드러내며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인주로 깨어난 계명풍과 연송의 긴 대화 장면에서는 작가의 섬세한 감수성과 심리 표현이 꽃처럼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깊게 빠져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2권

7장

명부의 사고수는 제소희의 소혼책을 찾아내어 직접 인간 세상에 내려와 건네주었다. 두꺼운 소혼책에는 제소희의 환생이 모두 기록되어 있는데 마지막 페이지는 인주의 현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인주가 아는 사람일 줄이야. 거기에는 희국여천 계씨명풍라는 여덟 글자가 쓰여 있었다.

이 책에 따르면 계명풍은 바로 인주가 1천7백2십4번째 환생한 것이다.

국사는 매우 놀랐고 연송도 잠시 뭔가 중얼거리는 듯했으나 뭐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연송은 국사가 죽을 만큼 부담스러워하는 임무를 맡겼다. 인주의 묘에 가서 그의 선체를 옮겨 놓으라는 것이었는데 인주의 묘소는 영기가 왕성한 곳이니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고 나서 명부에서 기억을 되살리는 물을 찾으라는 임무였다. 이 물을 지키는 잔인한 짐승을 조심하라면서....

한 달 만에 국사는 천신만고 끝에 인주의 선체와 기억수를 찾을 수 있었다.

삼생삼세 시리즈에서 3째 황자 연송을 연기한 이동항 배우

천극산과 인접한 곳에 밀림이 있는데 그 곳은 사계절 내내 짙은 안개가 뒤덮여 있어 아무나 볼 수 없는 곳이었다. 푸른 숲에는 엄청난 거목이 하나 있었고 그 안에 넓은 얼음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 한 사람은 누워있고, 한 사람은 앉아 있었다. 누운 사람은 몸에 황금 갑옷을 입고 가면을 쓰고 있었다. 죽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흰옷을 입고 있었는데 얼굴은 지극히 아름답고 기개가 있어 보였다. 이 광경은 바로 삼황자 연송이 인주 제소희에게 주술을 쓰고 있는 모습이었다.

국사는 연송이 인주를 일부러 윤회 중에 깨어나게 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매일 걱정하고 있었다. 연송은 '그는 이제 더 이상 인주가 아니다. 인간 세상엔 이미 많은 왕들이 있는데 그가 다시 깨어난들 더 이상 무슨 일이 일어나겠냐'라며 국사를 안심시켰다.

국사는 인주의 황금 탈을 벗기고 기억천 물을 마시게 하려 했다. 탈을 벗기는 순간 드러난 얼굴은 몇 만년 동안 환생을 거듭한 늙은이의 얼굴이 아니었다. 너무나 젊고 옥을 조각한 듯 수려한 모습의 계명풍이었다.

국사가 크게 놀라자 연송은 오히려 대수롭지 않다는 듯 국사의 손에서 물을 받아 인주의 입에 넣었다. 연송은 인주가 깨어날 때까지 먼저 그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노을 지는 하늘 아래 음침한 천막들이 벌판을 뒤덮고 있었다. 부족은 방금 참혹한 도륙을 당해 황무지 사방이 모두 시체의 피로 덮였다. 어린 인족 아이가 황망한 표정으로 기어 나왔다. 아이는 서너 살쯤 되어 보였는데 더러워진 얼굴에 구부러진 작은 칼을 안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맹수가 신선한 시체를 물어뜯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아이는 곧바로 굳어버렸다. 맹수가 소년을 알아채고 머리를 쳐들자 짐승과 소년의 눈이 마주쳤다. 아이가 칼을 천천히 들어 올리자 맹수는 격노한 듯 괴물 같은 소리를 내며 맹렬히 달려들었다. 아이가 맹수에게 목숨을 잃을뻔한 순간, 공중에서 한 줄기 빛이 나타났고 빛 속에서 맹수는 사라졌다.

"또 하나의 인족이 멸망했군"

푸른색 옷을 입은 소년이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인간은 너무 약해서 신족에게 종속되어 왔지만 지금은 네 종족이 출정하였으니 어찌 자신들은 보호할 수 있겠어? 이대로 간다면 멸족이 멀지 않았어"

흰색 옷을 입은 소년은 멀지 않은 곳에서 인족 아이를 경계하듯 바라보았다.

"존상께서 이 아이를 구하기만 하면 인족이 멸족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어."

푸른색 옷을 입은 소년: "정말 그 아이이가 저 아이야? 네가 틀린 건 아니지? 참, 왜 존상은 안 오시지?"

흰색 옷 소년: 부신이 또 오셔서 존상을 인재 학관에 초청하셨으니 아마 지체될 것이야"

푸른 옷 소년: 부신께선 왜 아직도 포기를 못하시지? 존상께서 학교를 싫어하셔서 열 번쯤 거절하셨는데도 말이야. 백 번을 권해도 존상께서는 가지 않으실 거야"

어느덧 푸른옷 소년이 흰옷 소년에게 존상이 매우 배려하고 아끼는 소녀의 기고만장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을 때 맑고 애교가 넘치는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또 내 험담을 하고 있는 거야?

아름다운 소녀가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푸른 옷 소년: "난 설의와 잡담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무슨 험담을 했다는 거냐?

설의(흰옷 소년)은 두 사람의 말다툼을 마지못해 듣고 있었다. 그들은 입씨름을 하느라 등 뒤에서 노란색 옷으로 가느다란 몸을 가린 흑단같은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누군가가 나타난 것을 몰랐다. 그 사람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안되었다.

"존상!"

존상이 오른손을 살짝 들어 올리자 넓은 소매 가운데 얼음처럼 희고 가느다란 손끝이 드러났다. 결코 성인이 아닌 그 사람이 아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아이를 훑어보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착하지"

소녀의 목소리였다. 아이는 망연자실해 그녀를 보고 있었는데 마치 그녀 입술에서 나오는 소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다시 한번 아이에게 "착하지"라고 말하며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를 따라 갈래?"

아이의 쉰 목소리가 들였다

"난 안 가요!"

아이는 손에 쥔 칼을 꼭 껴안고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난 아버지를 찾아갈 거야, 아버지랑 함께 있을 거야!"

"네 부족은 이미 멸망했고 네 아비와 어미도 세상을 떠났으니 우리는 네 부모님의 유골을 함께 가져갈 수 있단다."

아이는 양친이 모두 죽었다는 것을 깨닫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곧 콩알만한 눈물방울이 지저분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소년은 한번 흐느끼고 나서 참으려 애섰지만 눈앞의 신을 바라보며 결국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왜 이렇게 우니?"

아이는 어렸지만 이미 철이 들어버려 말할 수 없이 슬퍼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뒤에 서있는 소년,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운 가면을 쓰고 있어 소년들을 보는 것 같았지만 정확하진 않았다.

"인간에게 칠정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부모에 대한 정이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불쌍하게 우는 순둥이가 다시는 슬퍼하지 않도록 할 방법이 있느냐?"

그녀와 가장 가까이 서 있던 소녀의 얼굴색이 확 바뀌며 억울한듯 말했다.

"순둥이는 무슨 순둥이예요? 존상께서는 언제 나를 순둥이라고 부르신 적 있어요?"

그녀는 발을 차며 뛰어가 버렸다.

"재는 어린아이와도 경쟁하는군"

(자신이 호명될 까봐 얼른) "존상! 저는 아이를 달래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연꽃이고, 인족의 칠정도 모릅니다."

노란 옷의 존상은 아이에게로 얼굴을 다시 돌리며 말했다.

"그래도 너희 둘 중에 한 명은 꼭 아이를 달래야 한다."

그녀가 말하자마자 설의가 아이 곁으로 달려와 안고 올렸다 내렸다 하며 놀아주려 했다. 소년은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 공중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하나도 재미가 없었다. 손을 뻗고 발버둥쳤지만 팔이 작고 종아리가 그에게 닿지 않아 화가 나서 더 울고 말았다.

설의: "존상께서 처음 은임을 보셨을 때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이 아이도 장차 존상의 네 번째 사자가 될 텐데 이 아이에게는 어떤 이름을 하사하실 건가요?"

소녀가 머리를 약간 숙이자 검은 머리카락이 목덜미까지 미끄러져 그 가느다란 목덜미가 칠흑 같은 머리카락에 대비되어 거의 투명할 정도로 희게 보였다.

"이 아이는 인족이 오랫동안 바라던 빛이다. 소희는 빛이라는 뜻이니 지금부터 소희라 불러라, 제소희"

삼생삼세 침상서에서 성옥을 연기했던 원우훤 배우(袁雨萱)

연송이 제소희의 기억 속에서 처음 본 것은 어린 소희가 노란 옷을 입은 상고시대의 빛의 신을 만나는 장면이었다. 연송은 소녀의 모습을 한 이 상고의 신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우화 된 신들의 초상화는 거의 모두 동화 제군의 장서각에서 찾을 수 있지만 오직 이 빛의 신 만은 역사 책을 뒤져도 찾을 수 없었다. 유일한 모습은 뒷모습이었다.

천군은 사관에게 존상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역사 책에 수록하려 했지만 기록에만 근거하여 상상으로 그린 초상화는 감히 존상이라 할 수 없었다. 사관들은 빛의 신과 같은 세대인 동화제군에게 애걸하여 도움을 청했으나 제군도 존상의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 결국 연송의 어머니의 모습을 참작하여 뒷모습을 그려냈다고 한다.

30만 년 전에 태어난 빛과 진실의 신은 연송의 모후와 같이 단정하고 중후한, 나이 든 모습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소녀의 모습일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가면 속의 그녀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나 자태를 보면 인간의 나이로 치면 10대 소녀에 불과했던 것이다.

연송은 다시 제소희의 두 번째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이미 소년이 된 제소희의 모습이 보였다.

"청용! 네가 가져오란 물을 가져왔어 "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자 소년은 눈을 내리깔고 다시 말했다.

"그럼 안에 물을 넣어둘게요"

소희가 안으로 들어가자 욕조 안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여인은 나른하게 누워있었는데 하얀 팔이 물 밖으로 나와 이마를 받치고 휴식을 취하는 듯 했다. 물 속에서도 가면을 벗지 않아 그녀가 누군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물에 젖은 칠흑 같은 머리, 눈처럼 하얀 목덜미, 쇄골과 팔, 그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소년은 귀신에 홀린 듯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갔다. 소녀가 마침내 눈을 떴다.

"소희?"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색함도 당황함도 없었다. 다만 약간 의아하다는 듯이

"무슨 일 있니?"

그녀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탕에 기대앉아 고개를 약간 돌렸다.

"잠시 나가서 기다려 줄래?"

그녀의 따뜻한 목소리에 소희는 갑자기 정신이 들었지만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가 재차 의심스러운 듯 소희의 이름을 불렀지만 소년은 뺌이 빨갛게 상기되어 황급히 도망쳤다.

소년은 걷는데만 몰두하다 그만 청용과 부딪치고 말았다.

"요괴가 뒤에서 너를 따라오기라도 하니? 왜 이렇게 급해? 또 그렇게 쳐다보네... 내가 떠오라고 한 물은? 내가 너를 부려먹는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너른 훈련시키고 있는 거야, 넌 원래 자질이 좋지 않은데 경험을 많이 하지 않고 어떻게 존상의 사자가 될 수 있겠니?"

소년은 눈썹을 찡그렸다

"난 이미 당신의 방에 물을 넣어놨어요."

청용은 어리둥절해서 "존상의 목욕탕은 요즘 천수를 끌어다 뱀을 키우고 있어 존상은 나의 침실에서 씻고 계셨을 텐데....."

청용은 소년의 얼굴을 세게 잡아당겼다. 아름다운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너! 봤지?"

소년은 그녀의 손을 밀쳐내고 붉어진 얼굴로 그녀를 흘겨보았다.

"너도 그녀를 좋아하는구나"

소년의 얼굴이 불타올랐다.

"당신과는 상관없어!"

청용은 길길이 날뛰며 "넌 그 마음을 그만 거둬들여! 네가 잘 되길 바라서 하는 말이야. 존상은 일생을 욕망도 정도 없게 운명이 정해진 분이야! 진흙탕에 빠지기 전에 정신 차려!"

소년은 다시 화가 나기 시작했다.

"너 자신에게나 그 말을 하지 그래!"

이 짧은 말 한마디가 결국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다. 그녀의 얼굴은 웃는 듯 우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가녀린 손가락을 그의 콧등에 대고

"너! 잘못을 모르는구나!"

그녀가 발을 동동 구르며 가버렸다.

소년이 눈썹을 찡그리고 있자 어느새 우아하고 온화한 청년으로 성장한 설의가 옆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평소에 응석받이로 제멋대로 군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녀는 언제나 마음속으로 너에게 잘 대해줬어. 이번에도 너를 위해 하는 말일 거야.... 너도 알다시피 존상은 처음엔 성별이 없었다."

소년이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빛의 신은 어른이 되고 성년이 되었을 때 성별을 선택할 수 있어. 청용이 존상을 처음 만났을 땐 아직 성별이 없으셨을 때였다. 용모가 아름다워서 하늘 아래 보기 드문 존상께서 청용을 데리고 가려 하실 때 청용은 여러 가지 조건을 제시했고 존상은 승낙하셨다. 그 중에서 일생 동안 존상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도 있었다.

설의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나중에야 그것이 그녀 일족의 관습인 걸 알게 됐지. 남자는 아내를 만나 후에야 그의 본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이야. 청용은 존상을 낭군으로 여겼던 거야. 처음 존상을 만났을 때는 아직 성별이 없었기 때문에 성년이 되시면 남자가 되어 자신을 신부로 맞기를 전심전력으로 바란 것이지. 근데 존상이 여성이 되실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니... 존상이 여자가 되셨어도 청용은 이제 다시 발을 뺄 수 없을 정도로 존상께 깊이 빠지게 된 것이란다."

소년은 약간 당황했다. '난 고의는 아니었어요. 어릴 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머리를 숙이는 성격이 못돼요'라는 말을 채 마치지도 못하고 눈보라 속을 달려가 말했다.

"존상은 왜 여자가 되기로 선택하셨어요? 칠정 육욕도 없으신데 성별은 아무 상관도 없을텐데...(아무것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낮은 목소리로 마치 자신에게 말하듯) 그녀가 그렇게 좋아하는데 그녀를 위해 존상이 남자가 못될 건 또 뭐 있어요?"

"네 말이 맞다, 존상은 원래 욕망이 없었고 마음이 세상 것에 있지 않아. 성별은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녀가 어른이 되기 1년 전 어느 날 밤, 그녀는 꿈을 꾸었어. (느릿느릿하게) 꿈속에서 몇 십만 년 후, 그녀는 한 남신과 결혼하여 그 남신을 위해 아이를 잉태하는 것을 보았지. 성년의 날에 그녀는 하늘의 명령에 따라 여신이 되는 것을 선택한 거야."

소년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져갔다.

"그 남신이 누군데요?"

"존상께선 말씀하지 않으셨다. 다만 그 신이 수만 년 후에 태어날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천명이 신들의 인연까지 관여한단 말이에요?"

"존상의 예지몽은 결코 작은 일은 아니다. 빛의 여신으로 그 남신과 결합해 하늘의 순환을 이어갈 중요한 후손을 낳기 위해 여성이 될 것을 예시하고 운명적인 배우자를 보여 준 것이라 생각된다."

해 질 무렵, 소희와 존상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청년 소희는 손을 늘어트린 채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존상이 여자가 되는 것을 선택한 것은 그 예지몽을 때문이라고 설의가 말했어요, 그 꿈에서 도대체 뭘 보신 거예요? 왜 존상은 욕심 없는 신격을 버리고 인격을 추구하시는 겁니까?"

늘 초연했던 빛의 여신은 어리둥절해 보였다. "나는 버리고 싶었던 게 아니라 인격을 하나 더 갖고 싶었을 뿐이다. 늦지도 느리지도 않은 그때가 되면 인족이 편안하게 살게 되고 나도 사명을 다하게 되겠지. 그 후에 어떻게 할지는 신경 쓸 수 없단다...............................소희야 너에게 이런 걸 다 말했거늘 넌 오히려 이런 반응을 보이는구나. 내가 너에게 말한 것을 후회하게 만들려는 거니? 봄 같은 목소리에 청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제 마음을 이미 알고 계셨으면서 존상이 다른 사람을 위해 칠정을 경험한다는 건 나를 단념시키기 위해서지요? 그 사람은 무슨 덕이 있길래요? 심지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을 위해 여신이 되신 것도 모자라 설마 그를 위해 '인간의 욕망과 칠정'에 물들어야 한다니, 왜 때묻지 않은 빛의 신의 영혼을 송두리채 더럽히냐고요!"

그녀는 먼 곳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방금 그 예지몽에서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물어보았지? 그렇지? 나는 궁전이 우뚝 솟아 있고, 번화한 거리와 사막을 보았다. 그는 나를 위해 산천을 누비며 괴로워하고 온갖 근심 속에서 나를 찾았다. 마침내 어느 날 밤, 그는 나를 찾아와서 나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단다. "

여기서 그녀가 손을 들어 올리자 구름무늬의 넓은 옷소매가 흘러내려 소매 언저리가 살짝 드러났다. 그녀는 손을 가슴에 대며

"그가 그 말을 할 때 여기가 아주 심하게 뛰었다. 그리고 내 안에서 갑자기 오감이 흘러 넘치더니 그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나는 울고 말았다. 그것이 무언지, 도대체 그것이 무슨 뜻인지 분명히 알고 싶단다. 그렇지 않으면 하룻밤도 잠들 수 없구나."

"나는............"

그녀가 손을 아래로 내리며 그가 말하혀는 것을 막았다.

"4만 년 전 난 확실히 욕망도 집착도 없었다고 할 수 있지. 만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집착하지 않았는데 그날 밤, 그 순간 나는 집착하고 만 거야. 하늘이 정한 운명을 수만 년 후에 만나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날 밤의 설렘이 무슨 뜻이었는지, 내가 흘린 그 눈물은 또 무슨 뜻이었는지 알고 싶단다. 빛의 신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이란 이미 그 순간부터 물들었단다. 어째서 너나 청용을 위해 울지 않았느냐고? 왜 꿈속의 그 사람을 위해서 울었느냐고? 네가 아무리 내게 물어봐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겠느냐?"

청년은 얼굴이 창백해져서 힘껏 눈을 감았다.

바로 그때 두 사람 앞에 폭포가 거대한 파도로 변해 순식간에 두 사람은 파도 속으로 사라졌다. 제소희의 인식의 바다 위에 갑자기 높이 솟은 파도는 기억의 흐름을 가로막았다. 위에서 순식간에 수많은 활과 화살이 날라왔는데 연송의 반응은 매우 빨랐다. 연송은 몸을 날려 화살이 날아오기 전에 인주의 의식에서 빠져나왔다. 다만 뒤에는 광란하는 화살이 인주의 의식의 바다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18만 년간의 인주의 모든 기억이 되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