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권 8 해본 초보자의 생각.

격투 게임이 온전한 개인의 실력이라고들 말하지만 나는 가위바위보 같은 운에 더 가깝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같은 초보자가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수의 견해는 또 다를수도 있겠지.

누군가는 가위바위보를 할 때 상대가 내는 손을 찰나의 순간에 포착하는 훈련을 하면 승률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다. 재능으로 그런 동체시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을수도 있다. 혹은 남자는 주먹, 여자는 가위를 낼 확률이 높다는 통계 데이터가 있다고 하면 그걸 활용해서 털끝만큼이라도 승률을 올려볼 수도 있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가위바위보는 실력보다 운에 더 가깝다고 봐야한다.

KING의 모든 기술 개수를 보자. 거의 200개 가까이 된다. 200개. 내가 200개의 기술 커맨드를 다 외우고 다닐 수 있을까? 그리고 상대 캐릭터의 기술 200개를 노력해서 외우고 다니면 내가 이길수 있는걸까?

가위바위보의 규칙과 주먹, 가위, 보를 알고 있다고 해서 내가 승률이 높아지는게 아니다. 즉 기술 200개를 다 암기하고 다닌다고 해서 그게 실력이 되는것도 아니고 전혀 나의 승리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거. 보고 피하는 사람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기술중에 유난히 딜레이가 긴 기술의 얘기고 딜레이가 짧은 기술이나 빠르게 전환을 해버리면 암기가 다 무용지물된다.

무엇보다 철권의 게임 호흡이 너무도 빠르기 때문에 엄청난 딜레이가 있는 기술이 아니면 보고 피하거나 대처가 어렵다. 몰라서 당하는게 아니라 알아도 당한다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철권을 하기 위해 저 많은 기술을 암기해야만 하는것은 아니다.

기술이 저정도로 많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눌러도 그럴듯한 기술 나간다. 아무거나 눌러도 얻어 걸리는 것이다. 그게 초보자가 철권을 플레이 할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어쨋든 내가 조작키를 다 암기하지 않아도, 전혀 모른다고 해도 기술이 안나가거나 캐릭터가 아무것도 못하고 얻어맞기만 하다가 끝나지는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키나 눌러도 어쨋든 기술은 나가고 격투가 성립이 된다. 어차피 가위바위보라서 운 좋으면 고수들을 한대라도 때릴 수 있다.

초보자도 기술을 쉽게 쓸 수 있고, 화려한 액션과 타격감, 이펙트를 즐길 수 있다. 격투게임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나지만 즐겁게 게임할 수 있었다. 초보자도 즐길 수 있는 게임. 그리고 자기가 욕심이 생기면 더 알아보거나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도 열려있는 게임. 이런게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인거 아닐까?

사실 기술 개수가 200개라고 해도 누가 저걸 하나하나 암기해서 상황에 맞게 최적의 키를 누를 수 있을까. 우리가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기능이 백만가지가 있다고 해도 자주 쓰는 기능만 쓰는 것처럼 철권도 똑같다. 200개 중에 실전에서 써먹을만한 효율 좋은 기술을 추리면 훨씬 줄어들거다.

KING의 주력기를 보자. 약 20개로 대충 모든 기술중에 10% 정도밖에 안된다. 물론 20개도 암기하라고 하면 많은 양이기는 하다.

아무튼 철권의 격투 호흡은 암기가 거의 무의미해질 정도로 속도감이 좋다. 빨리 끝난다. 철권의 속도감을 맛본 후에 몬스터 헌터같은 게임을 하면 굉장히 무겁고 느리고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검 하나 휘두르는데 몇초씩 걸리는거 절대 못참는다. 몬스터 헌터는 그래픽 퀄리티로 보나 속도감으로 보나 철권이라는 훨씬 좋은 상위 대체재가 있어서 빠르게 하차해버렸다.

철권은 초보자도 즐겁게 게임할 수 있다. 굳이 사람들이랑 붙는게 싫으면 AI 대전을 하거나 스토리모드로 하면 된다. 그렇게만해도 돈값은 충분히 한다. 게다가 세일까지 한다? 절대 못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