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문명6 (Civilization 6)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다.

시드 마이어의 말이다. 시드 마이어의 게임에 대한, 시드 마이어의 정의다. 그의 말은 다를 때 아닌, 시드 마이어와 파이락시스가 만드는 게임의 특징을 이해하고자 할 때, 그것을 돕는다.

이 양반, 곧 칠순이다

시드 마이어는 소위 일컬어지는 네임드 개발자로, 여러 장르에서 선구적인 게임들을 많이 만들었다. 이를테면 문명 시리즈는 4X의 조상으로 불리며, 시드 마이어의 해적은 샌드박스 장르의, 레일로드 타이쿤은 경영 시뮬레이션류의 조상으로 불린다. 유일한 조상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장르를 창시했다기보다는 정립했다고 이야기하는게 정확할 것 같다. 인상파의 모네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것 아닐까.

시드 마이어 본인이 밝혔듯, 그의 게임은 이전에 자신이 즐겼던 보드 게임, 전자오락, 혹은 다른 취미를 소재로 삼아 만들어졌다. 그리고 시드 마이어의 게임을 재미있게 즐긴 사람들이 다시 그걸 소재로 삼아 비슷한 게임들을 만들어오고 있다. 이것이 선순환일 것이다.

동세대 개발자인 윌 라이트와는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다. 둘 다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유명하지만, 시드 마이어는 제작 과정에서 세상의 여러 관심사를 소재로 삼아 "게임"을 만드는 반면, 윌 라이트가 만드는 시뮬레이션은 현실 세상의 재현으로서, 그 표현 방법이 "게임"의 형태에 있다. 윌 라이트의 관심사는 게임 그 자체보다는 세상과 삶, 경험을 모사하는 것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참고1) (참고2)

문명 시리즈는 지구상의 여러 문명을 소재로 하는 전략 시뮬레이션 시리즈다. 1편의 출시는 1991년이었고, 6편의 뉴 프론티어 패스는 2021년이다. 세어서 30년을 넘긴 것인데, 그동안 넘버링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나왔으니, 이 사실만으로도 시리즈와 핵심 개발자들의 저력을 가늠할 수 있는 셈이다.

내라는 7은 안내고 패스가 또 나온다

이 거대한 시리즈와 그 최신작에 난 막연한 동경을 품었다. 문명5보다 복잡하지만 "진짜"들은 6을 더 좋아한다고? 직접 해보기도 전부터, 그렇게 문명6은 내 마음속 완벽한 턴제 전략게임으로서의 우상이 되어 자리잡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플레이를 구경해보니 뭔가 대단히 전략적이고 어려워서 재미있어 보였다. 그래서 직접 해 봤는데, 뭔가 대단히 전략적이고 어려워서 때려치웠다. 그게 대충 2019년이다.

두어달쯤 전부터 시간을 내어 짬짬이 다시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해 보니, 어떤 구조의 게임인지, 어떻게 플레이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완벽한 게임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알아감에 따라 막연한 경외감은 사그라들었으나, 여전히 문명6는 놀랄만큼 재미있는 게임이다.

이것이 "아름다움"

문명6은 자신의 문명을 발전시켜, 다른 문명과 경쟁하는 게임이다. 진행은 턴제고, 넓은 보드에 기물을 두고 진행하기 때문에, 플레이하는 감각은 보드 게임이랑도 비슷하다. 싱글 플레이도 되고 멀티 플레이도 되는데, 싱글은 사람이 앉았어야 할 자리에 AI를 대신 앉혀놓은 느낌이라, 게임으로서의 완성도는 멀티가 더 낫지 않나 싶지만, 싱글도 덤 수준은 아니다.

싱글이든 멀티든 시작할 때, 지도의 자원량이나 각 타일 유형의 비율, AI와 도시국가의 숫자 등 이런저런 옵션을 수정할 수 있다. 적당한 표준 설정으로 게임을 시작하게 되면, 수도를 펴야 하는 개척자 하나, 호위용 근접 유닛 하나가 주어진다. 최초 개척자가 지도 위에 수도를 펴는 것으로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된다.

우리 친하게 지내요

문명6에서 묘사하는 문명은, 여러 도시의 군체이며, 개별 문명은 각각 한 명의 플레이어와 대응한다. 게임에서 올릴 수 있는 여섯가지 주요 산출(식량, 생산력, 금, 과학, 문화, 신앙)은 각 도시, 혹은 문명의 스텟과도 같다고 이해할 수 있다.

표준적인 문명6의 플레이 목표란, 몇 가지 승리 조건 중 하나를 달성해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다. 그것을 위한 대전략, 그 하위 차원의 전략, 전술을(장기 목표와 단기 목표, 플레이 방식 등을) 직접 결정하고, 수행하는 것이 곧 문명6라는 게임의 플레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는 어떻게 산출(스탯)을 올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이렇게 승리 조건의 달성이라는 하나의 큰 목표와, 그 하위의 다층적인 전략을 수행하는 과정은, 매 게임마다의 지도, 상황,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랜덤을 박았던 어쨌던간에) 문명의 특성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수백시간에 걸쳐 여러 회차의 세션을 플레이하더라도 쉽게 질리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질리지 않는 것은 단지 선택지가 다양하기 때문이 아니다. 감탄해 마땅한 것은, 개중 뭘 골라야 할 지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어떠한 선택지가 정답인지 알기 위해선 여러가지 사항을 고려한 예측이나, 여러번의 플레이 경험이 필요하다. 이것이 문명6을 어렵고 골치아픈 게임으로 만드는 동시에, 깊이감을 만든다. "낮은 대중성"이나 "5에 비해 높은 진입 장벽"은 이 점에서 나오는 문제이며, 높은 만족감 역시 여기에서 비롯한다.

도시마다 일일히 생산품목을 눌러주다보면 어느새 돌아버린다

이렇게 선택을 까다롭게 만드는 원인은 크게 어림잡아 두 가지 정도가 있는데, 그중 첫 번째는, 당연하지만, 다른 경쟁 문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행동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변수가 엄청 늘어난다. 때문에 플레이어가 내놓은 답이 정답이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한참 나중에야 내릴 수 있는 결과론적인 것이 된다. 다만 싱글 플레이에서 이 역할을 하는 AI의 성능이 별로다. 이 점은 후술한다.

욕심만 아주 그득그득

더 근본적으로는, 게임의 규칙 자체가 세세하고 복잡해 어려운 까닭이다. 외워야 할 것들이 많은데, 말 그대로 공부를 해야 하는 수준이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우선 승리 조건과 산출에 대해서다.

노리는 승리 유형에 관계없이, 그것에 다가선 문명은 모든 산출이 대체로 높다. 앞서 비유했던 것처럼, 각 도시와 문명이 가지는 6가지 산출은 곧, 문명의 스텟이라고 생각하는게 편한데, 승리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서는(게임을 이기기 위해서는) 우선 이 산출을 높여야 한다.

근데 또 한 가지 산출이 높다고 해서, 그것이 게임의 승리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과학이나 문화를 무작정 높인다고 해서 과학승리나 문화승리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승리의 경우엔 우주 탐사 프로젝트(도시 생산력과 이런저런 자원이 들어가는)를 완료해야, 문화 승리의 경우 걸작과 불가사의 따위에서 나오는 '관광'이라는 자원을 따로 모아야 한다. 각 조건의 세세한 설명을 여기 덧붙이는 것은, 단지 게임이 복잡하다는 주장의 반복일 뿐이며, 공간 낭비에 불과하므로, 생략한다.

왜 게임이 안끝나는지 모르겠다

정리하자면, 문명6에서 흔히 내정이라고 부르는 것은, 산출을 높이는 것이며, 산출(스텟)을 높여야 하는 이유는, 단기적으로는 다른 산출을 높이기 위함이고, 장기적으로는 승리 조건을 달성하기 위함인데, 한 가지 산출이 높다고 해서, 그것이 승리와 직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여러 산출을 고루, 빠르게, 필요한 만큼 올리는 것이 곧 내정을 잘 하는 것이며, 그런 뒤에(그러는 동시에) 승리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플레이를 효율적으로 하는 것이 문명6을 잘 하는 것이다.

얼핏 생각했을 때 내정과는 반대편 정극단에 있는게 아닌가 싶은 전쟁 역시 단순히 유닛 뽑아서 치고받는게 아니다. 전쟁에서 의미있는 결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상대에 비해 군사적인 우위(생산력이나 군사 과학기술이 앞선다던가 하는)가 필요하며, 그 우위를 준비하는 것이 곧 내정이고, 전쟁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이득(도시를 점령하든 시설을 약탈하든)이란 곧 더 높은 산출이므로, 전쟁과 내정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 밖에도 외워야 하는 것들과 골치아픈 규칙들이 산더미처럼 있다. 문명6에서 새로 도입된 유레카/영감 시스템은, 각 수십가지 개별 기술에 대한 서로 다른 내용의 퀘스트라고 할 수 있으며, 시대마다 바뀌는 도시국가 퀘스트, 위인 효과, 종교관, 종교 교리, 쾌적도, 주거공간, 타일 매력도, 건설자가 만드는 시설의 입지 조건들, 불가사의, 사회 제도로 열리는 정책카드, 시대점수, 암흑기 카드, 그리고 문명6 내정의 꽃이라 불릴만한, 특수지구 심시티... 기타등등.

아예 게임 안에 위키가 있다

이러한 것들을 알고, 고려해서 자신의 전략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문명6은 어려운 게임이다. 앞서서부터 주구장창 얘기하는, 선택(시드 마이어가 좋아하는)이란, 어떠한 전략(목표)을 고를 것인가? 와 같은 말이다. 그리고 문명6의 전략이란, 여러가지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교환해나가는 과정의 반복이다.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단기적으로 설정된 교환방향(전략)이 장기적인 교환방향과 대치되는 상황이 잦기 때문에, 그때그때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세세한 선택을 스스로 해야 하는 것, 그 과정에서 목표의 경중, 우선순위, 차선책 등을 스스로 따져봐야 하는 것이 재미있다. 앞서 얘기했듯 게임의 규칙이 복잡하고, 매 판 변수가 많기 때문에, 초심자든 고수든 선택에 앞서 고민이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규칙에 대한 이해도, 전략의 구상이 미흡하고 막연하더라도, 사실 게임 자체는 어떻게든 굴러간다. 우선 싱글 플레이의 경우 AI가 멍청하고, 인간 플레이어도 모든 규칙을 다 숙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가장 중요한 스타팅 지형은 항상 복불복이 있기 때문이다... 입문은 쉬운데 마스터는 어려운 게임의 일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스매시는 개중에서도 세련된 편이라고 한다면, 문명6는 시스템의 골조가 다 드러난 편이다.

이래놓고 야드비가 못뚫어서 껐다

개인적으로 문명6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전문 특수지구의 인접 보너스 설계다. 각 도시는 종류별로 각각 하나씩 여러가지 특수지구를 지을 수 있다. 특수지구는 도시의 타일 하나를 온전히 차지하며, 기존 타일 산출량은 지워진다. 전문 특수지구는 종류별로 주요 산출중 5가지(생산, 금, 과학, 문화, 신앙)를 뱉어내는, 도시 산출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전문 특수지구는 인접 타일의 상태에 따라, 자원 생산량에 보너스를 받는데, 여러가지 조건을 따져 가장 효율적인 설계를 만드는 것이 가장 낮은 차원에서의 전략이며, 문명6 내정의 꽃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이걸 흔히 특수지구 심시티라고 부른다.

심시티는 일종의 퍼즐인데, 전문 특수지구마다의 인접 보너스 조건이 다 달라, 이 부분은 별 수 없이 외워야 한다. 특수지구의 설계는 전체 게임플레이서 신경써야 하는 대전략과는 다소 별개의 플레이가 되는데, 전략 세우기와는 또 다른, 오밀조밀한 작업이 필요한 부분이라 또 재미있다. 특히 송수로-산업지구의 인접 보너스가 크리티컬해서, 인터넷에 보면 별의별 레이아웃이 다 올라와있다. 내가 설계한 도시라는 애착이 생겨서 좋다.

문명6은 사실 고인접 특수지구를 만들기 위해 하는 게임이다

싱글 플레이 시 AI의 성능이 별로라는 점이 옥의 티가 된다. 고난이도 AI의 경우 이런저런 생산력 고정 보너스는 무지막지하게 받는데, 하는 행동이 중구난방이고 특수지구 설계도 대충대충이다. 나름의 밸런스 조절이 아닐까 싶은데, 나중가면 허수아비랑 하는 기분이다. 개발자들이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파이락시스의 문명6에서 찾아볼 수 있는 흥미로운 선택이란, 플레이어로 하여금 까다로운 고민을 거듭하게 만드는 것으로 구현되었다. 알아야 하는 것이 굉장히 많아 정말 피곤하지만, 매 게임마다 한 턴 한 턴을 고민하면서 넘기게 된다. 솔직히 아직 어떤 게임인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문명6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